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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여행과 맛집

풍수소풍(26.6.13.) - 영덕

by 고래빵 2026. 6. 14.

배산임수(背山臨水)
전저후고(前低後高)
전착후관(前窄後寬)
 
걸출한 인재의 자취가 서려 있거나, 당대 가문의 당당한 위세를 품고 있는 고택들을 찾아보는 
"풍수소풍"을 다녀왔다.
풍수 선생님을 모시고 총 7명이 영덕 일대의 고택들을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 '풍수 소풍'은 처음이라,
풍수지리의 개념만 대략 이해한 채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괴시마을. 이름에서 어딘가 모르게 조금 섬뜩한 느낌이 풍기는 마을이다.

 

영덕(盈德)의 북쪽인 영해면 소재지에서 동북으로 1㎞를 가면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가옥들로 고색창연한 영양 남씨 집성촌인 괴시전통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은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松川) 주위에 늪이 많고 마을 북쪽에 호지(濠池)가 있어 호지촌(濠池村)이라 부르다가, 목은 선생(1328~1396년)이 문장으로서 원(元)나라에서 이름을 떨치고, 고국으로 오는 길에 들른 중국 구양박사방(歐陽博士坊)의 괴시마을과 자신이 태어난 호지촌이 시야가 넓고 아름다운 풍경이 비슷해, 귀국 후 괴시(槐市)라고 고쳐지었다고 전한다.

고려 말에 함창 김씨(咸昌金氏, 목은 선생의 외가이며, 선생의 외조모는 영양 남씨)가 처음 입주(入住)한 이래, 조선 명종(明宗,1545-1567)년간에는 수안 김씨(遂安金氏), 영해 신씨(寧海申氏), 신안 주씨(新安 朱氏) 등이 거주하다가, 인조(仁祖) 8년(1630년)부터 영양 남씨(英陽南氏)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후 타성(他姓)은 점차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영양 남씨가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문벌(門閥)을 형성하였다.

마을 앞은 동해안의 3대 평야인 기름진 영해평야가 펼쳐져 있고, 남동쪽의 망일봉(望日峰)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세(山勢)가 마을을 입(入)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 지형(地形)에 맞추어 대부분의 고택들이 서남향(西南向)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마을을 가로지르는 기와 토담 골목길을 중심으로 2~3백여년 된 ''''口''''字形 구조의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어, 영남(嶺南) 반촌(班村)에서도 보기 드문 공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괴시전통마을은 조선후기 영남지역 사대부들의 주택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문화와 예절이 훌륭하게 전승(傳承)되고 있다. 또한 영양 남씨 괴시파종택(槐市派宗宅:경북 민속자료 제75호)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재와 전통고가 30여 호가 남아 있어 조상들의 생활과 멋을 엿볼 수 있는 전통 민속마을이다. 해마다 학자들과 학생,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며, 격년제로 마을에서는 "목은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출처 : 영덕관광포털>

 
안내판 위에서 새소리가 나길래 쳐다보니,
귀여운 참새가 편히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부시게 청명한 날씨를 느껴보며 선생님을 따라 마을 입구로 향했다.
선생님께서는 주택이 꼭 남향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뒤쪽에는 작은 산이 자리하고 앞쪽으로는 멀리 아담한 산줄기가 바라보이는 구조가 좋다는 설명에...
(열심히 풍수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 중...)

 
요즘 고택들은 숙박업을 하는 곳이 제법 많은 거 같다.
오래된 고택에 에어비앤비라니, 다들 신기해하며 한 마디씩 한다. 

 
고택마다 특징을 설명하시는 선생님이시다.

 
500년도 넘은 오래된 고택을 보니 조상님들의 건축에 대한 미적 감각과 건축기술에 대단함을 느낀다.

긴 세월 동안 허물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시골이라 제비가 흔하게 보인다. (반갑다^^)
고택 입구 조명에 집을 지어놓은 녀석도 있다.

 
'ㅁ'형태의 집안 구조도 특색이 있다.

 
마을 곳곳에 흔하게 보이는 석류나무. 
꽃이 참 예쁘다!

 
괴시마을에서 태어난 이색선생 생가로 향한다.

고려 후기의 문인이며 학자인 목은(牧隱) 이색(1328∼1396)선생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사람이다.

충혜왕 복위 2년(1341)에 진사가 되고, 충목왕 4년(1348)에 원나라에 가서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귀국하여 공민왕 1년(1352)에 전제개혁,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당면한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이듬해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나라에 가서 1354년 회시(會試)·전시(殿試)에 합격하였으며, 1355년 원나라의 한림원에 등용되었다. 귀국하여 인사행정을 주관하고 1361년 홍건적의 침입 때 왕을 호위하여 1등공신이 되었다. 1391년에 한산부원군에 봉해지고, 태조 4년(1395)에 한산백으로 봉해졌다.
<출처 : 국가유산포털>

 
목은 이색 선생의 생가터에 있던 본래 건물은 사라지고, 지금은 좌측에 기념관을 새롭게 지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새로 지은 기념관은 남향이라, 서향이었던 기존 생가터와는 방향이 달랐다.  
풍수 선생님은 "꼭 남향이 좋은 게 아니라, 지형과 풍수에 맞춰 방향을 정해야 하는 법"이라며 아쉬워하셨다. 
이곳은 본래 서향으로 집을 지어야 하는 터인데, 엉뚱하게 남향으로 기념관을 잘못 앉혔다는 얘기다.

 
목은 이색선생의 생가터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을 설명하시는 풍수 선생님 되시겠다. 
저 멀리 능선이 아름답게 보이고 생가터 아래에 제비소가 있는 등
풍수적으로 좋은 곳이라는 설명~ 

 
목은 기념관을 둘러보고 괴시마을 아래로 내려왔다. 
바닥에 깐 황토(?)가 말라서 밝은 색을 띠고 있어 눈이 부시다. 
바닥은 마사토가 더 좋지 않았을까?

 
고택에 택배차량이 방문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이색적인 모습이다. 

 
영덕에 고택이 참 많다. 고택이 많은 이유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풍수 좋은 명당을 찾아 정착한 양반들이(풍수), 험한 지형 덕분에 전쟁의 피해를 보지 않고(지리), 수백 년간 자신들의 가문과 옛집을 지켜온(역사)" 덕분에 오늘날 훌륭한 고택 기행의 명소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분홍색의 꽃이 참 예쁘다 "분홍낮달맞이꽃"이라고 한다. 
꽃이름으로 잠시 옥신각신했다.  '낮'이란 글자가 있어서
당연히 낮에 피는 꽃이라는 의견과, 분홍빛 낮(얼굴)을 품은 꽃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결국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원래 밤에 피는 달맞이꽃과 달리 '낮에 피는 달맞이꽃'이라서 붙은 이름이었다. ^^

 
 
배산임수(背山臨水) - "뒤에는 산, 앞에는 물"
전저후고(前低後高) - "앞은 낮고, 뒤는 높아야 한다"
전착후관(前窄後寬) - "입구는 좁고, 안은 넓어야 한다"